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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도움되는 지식

루트비히 구트만

by 글쓴이§※↔※↔ 2022. 2. 14.

스토크 맨데빌과 패럴림픽

루드비히 구트만 CBE FRS[1] 경(1899년 7월 3일 ~ 1980년 3월 18일)은 독일계[2] 영국인 신경과 의사로 영국에서 장애인체육대회(PWD)로 발전한 스토크 맨데빌 게임을 설립하였다.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나치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 의사 구트만은 장애인을 위한 조직적인 신체활동의 창시자였다.

루트비히 구트만


1943년 9월 영국 정부는 구트만에게 버킹햄셔에 있는 스토크 맨데빌 병원에 국립 척추 부상 센터를 설립할 것을 요청했다.[7]영국 공군은 "폭격기가 파손된 채 접근하다가 추락하는 일이 잦았다"[17]는 척추 부상을 입은 조종사들의 치료와 재활을 확실히 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1944년 2월 1일 영국 최초의 척추 부상 치료 전문 부대인 이 센터가 문을 열자 구트만이 이사로 임명되었다(Guttmann은 1966년까지 재직했다).그는 스포츠가 부상당한 군인들의 재활을 위한 중요한 치료 방법이라고 믿었고, 그들이 체력과 자존심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18]

구트만은 1945년에 귀화한 영국 시민이 되었다.[19]그는 런던 올림픽 개막과 같은 날인 1948년 7월 29일 병원에서 열린 제1회 스토크 맨데빌 장애인 참전용사 대회를 주관했다.모든 참가자들은 척수 부상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경쟁했다.[18]Guttmann은 그의 환자들이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Paraplegic Game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이러한 게임들은 "병렬 게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후에 "병렬 게임"이 되었고, 다른 장애들도 포함되게 되었다.

1952년까지 130명 이상의 국제 경쟁자들이 스토크 맨데빌 게임에 참가하였다.연례 행사가 계속 성장함에 따라, 모든 관련자들의 정신과 노력은 올림픽 개최국들과 국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1956년 스토크 맨데빌 대회에서 구트만은 휠체어 스포츠에서 파생된 사회적, 인간적 가치를 통해 올림픽 운동에 공헌한 공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토마스 피어린리컵 경상을 받았다.

올림픽 그 자체와 맞먹는 국제 경기에 대한 그의 비전은 1960년 로마에서 열린 공식 하계 올림픽과 함께 국제 스토크 맨데빌 경기가 열리면서 실현되었다.당시 제9회 국제 스토크 맨데빌 대회로 알려졌으며 세계장애인연맹(국제장애인체육 실무그룹)의 지원으로 조직된 이들은 현재 제1회 장애인올림픽으로 인정받고 있다.(198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패럴림픽 경기'라는 용어를 소급 적용했다.)[20]

1961년, 구트만은 영국 장애인 스포츠 협회를 설립했고, 후에 영국 장애인 스포츠 연맹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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