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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도움되는 지식

칼리굴라 황제

by 글쓴이§※↔※↔ 2022. 2. 13.

로마의 황제

공식적으로 가이우스(Gaius Caiser Augustus Germanus)로 알려진 칼리굴라(/Khlʊ/;; 8월 12일 ~ 1월 24일)는 37년부터 41년까지 통치한 세 번째 로마 황제였다.유명한 로마 장군 게르마누스와 아우구스투스의 손녀 아그리피나 장로의 아들로 칼리굴라는 로마 제국의 첫 번째 지배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통례적으로 훌리오-클라우디 왕조로 알려져 있다.

게르마누스의 삼촌이자 양아버지 티베리우스는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가이우스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만, 게르마니아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아버지의 병사들로부터 "칼리굴라"(작은 [솔리어의 신발]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얻었다.게르마니쿠스가 19년 안티오키아에서 죽자 아그리피나는 여섯 자녀를 데리고 로마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티베리우스와 심한 불화에 휘말리게 되었다.그 갈등은 결국 칼리굴라를 유일한 남성 생존자로 하는 등 그녀의 가족을 파멸로 이끌었다.26년 티베리우스는 공적인 생활에서 카프리 섬으로 물러났고, 31년 칼리굴라가 그와 합류했다.37년 티베리우스의 죽음에 이어 칼리굴라가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칼리굴라 황제



칼리굴라 통치 초기 6개월 동안 고귀하고 온건한 황제로 묘사되지만 칼리굴라 통치와 관련하여 살아남은 원천은 거의 없다.이후 소식통들은 그를 미친 폭군으로 내세우며 잔인성, 가학성, 사치성, 성적 변태성 등에 초점을 맞춘다.이러한 출처의 신뢰성은 의심스럽지만, 칼리굴라는 그의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공국 내부의 상계 권력에 대항하는 것과는 달리 황제의 구속되지 않는 개인 권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자신을 위해 야심찬 건설 프로젝트와 호화로운 주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로마에 아쿠아 클라우디아와 아니오 노부스라는 두 개의 수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그의 통치 기간 동안, 제국은 고객 왕국인 마우레타니아를 지방으로 합병했다.

41년 초, 칼리굴라는 프레이토리아 근위대 장교와 상원의원, 궁정들의 음모의 결과로 암살되었다.그러나 로마 공화국을 회복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려는 공모자들의 시도는 좌절되었다.칼리굴라 암살 당일에 프레이토리아인들은 칼리굴라의 삼촌 클라우디우스를 차기 로마 황제라고 선언했다.줄리오-클라우드 왕조는 68년 조카 네로가 멸망할 때까지 제국의 지배를 계속했지만, 칼리굴라의 죽음은 남성 계열에서 줄리 카사레스의 공식적인 종말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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